ㄱ씨의 남편 ㄴ씨가 갑작스레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ㄱ씨는 산재유족급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사업장이 제출한 ‘공식적인’ 근태기록 등을 토대로 개인적 소인에 의한 것이라며 불승인 처분을 했다. 개인적 소인이라니,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낸 ㄴ씨인데 건강을 해칠 개인적 시간이나 있었다면 억울하지나 않겠다. ㄱ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ㄴ씨가 과중한 업무로 사망했다는 점은 원고인 ㄱ씨가 증명해야 했다. 그런데 ㄴ씨는 이미 말이 없고, 동료들도 대부분 현직자이기에 입을 닫는다. 진술서 한 장 받기가 참 어렵다. 회사에 사실조회신청을 해보아도 산재라면 펄쩍 뛰는 회사에서 순순히 자료를 내어 줄 리 만무하다. 결국 모인 증거들은 피고 공단이 수집(혹은 사업장이 편항적으로 선별해 제공)한 자료들이 대부분이고, 재판부는 망인이 업무로 인해 사망하였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ㄱ씨 패소판결을 했다.
각색한 사례다. 이 사례처럼 무수히 많은 근로자(또는 유족)들이 지금도 입증 부족을 이유로 패소판결을 받아 들고 있으나, 대법원은 여전히 상당인과관계의 존부가 명확하지 않다면 그에 따른 불이익은 보험급여의 지급을 구하는 원고가 져야 한다는 점에 입장이 확고하다(2021. 9. 9. 선고 2017두45933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나 이 판결의 단호함에도, 반대로 공단이 재해와 업무가 무관함을 증명하게 함이 옳다고 다시 한 번 떼를 써본다. 이유를 살펴보자.
‘업무상 재해’의 증거 대부분이 당연히 ‘업무의 영역’, 즉 회사 측에 편재돼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업체는 산재가 발생했음을 한사코 부정한다. 이런 현실에서 재해근로자쪽, 특히 유족이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수집·조사하기란 현실적으로 극히 곤란하다.
반면 피고 공단은 재해조사와 관련해 근로자쪽과는 비교조차 어려운 전문성, 권한, 물적·인적 자원을 갖추고 있고, 그 결과 실무적으로 소송에 현출되는 자료의 대부분은 공단이 수집·조사한 것들이다. 이처럼 당사자 간 능력의 차이가 현저하다면 그에 따라 증명 책임 역시 분배하는 것이 실질적 공평·정의의 원칙에도 부합할 것이다.
공단은 현재도 보험급여 지급신청 단계에서부터 상당인과관계 유무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자료를 수집·조사하고 있다. 따라서 그 부존재를 공단에게 증명하도록 하더라도 업무 부담이 크게 증가하거나 실무에서 혼란을 야기할 위험성은 거의 없다고 볼 것이다. 또한 이는 조사가 충실히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유사하게 당사자 간 능력의 차이가 크고 증거도 편재돼 있는 경향이 큰 의료소송, 환경소송, 제조물책임소송은 관련 법령 또는 판례에 의해 원고의 입증책임을 크게 완화하거나, 피고에게 전환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무원재해보상법에도 특례조항(제4조의 2)이 신설, 일정한 경우 발생한 질병 등을 공무상 재해로 추정하도록 해 제한적으로나마 입증책임을 전환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본문은 일정한 경우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본다는 원칙을, 단서는 업무와 재해 사이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예외를 규정하고 있는데, 본문·단서의 구조로 규정된 다른 대부분의 법률 조항의 경우 본문의 사실은 그 법률효과의 발생을 주장하는 자가, 단서의 사실은 이를 다투는 상대방이 각 증명책임을 진다고 해석함이 일반적이다.
한편 앞서 언급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대법관 4명이 이 칼럼의 주장과 결론을 같이하는 반대의견을 낸 바 있다. 문제 제기가 지속돼 언젠가는 판례가 변경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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