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선 노동법상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아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후 소송에서 노동자성 여부와 퇴직금 등을 다퉜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항소심까지 다 이겼다. 법리적으로 더 다투고 싶은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대법원 상고는 하지 않았다. 변호사시험은 매년 1월에 있고 4월에 결과가 나오는데 지난해 변시에 떨어지고 나서는 공부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항소심 판결은 지난해 7월에 있었다. 이후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지연이지가 붙고 있는 중이다.) 항소심 준비를 하면서 변시도 준비해야 했고, 점수도 아깝게 떨어져서 올해는 시험에만 집중했다. 합격자 발표 이후에야 가압류 등 항소심 집행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향후 계획은?
"대부분 로스쿨 학생들이 해보겠다는 분야가 명확하기보단 인연이 닿아서 입사한 회사에서 다루는 분야에서 경험을 쌓는다. 나는 반드시 노동만 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왕이면 조금 더 법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을 대리하고 싶다. 지금 일하게 된 법무법인은 산업재해와 노동 쪽 특화된 곳인데 일단 수습 때는 가리지 않고 일을 배워야겠다."
-로스쿨에 다니고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방송계 비정규직 현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는데, 한마디 남긴다면?
"김유경 노무사(노동법률사무소 돌꽃) SNS를 통해 요즘 방송작가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정이 계속 나오고 있는 걸 보고 있다. 절망적일 때가 많았는데 내 이야기를 에너지 삼아서 더 갈 수 있었다고 얘기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변호사 합격했다고 김영미 PD(분쟁지역 전문)에게 전화왔는데 울먹이길래 둘이 같이 울면서 얘기 나눴고,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도 연락이 왔다. 난 공부하느라 힘을 주지 못해서 속상했는데 (이씨는) '계속 공부를 이어가서 고맙다'고 하셔서 마음이 뭉클했다. 이재학 PD도 판결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법원은 이 PD가 청주방송에서 일한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끝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난 이 PD보다 나은 재판부를 만났는데도 힘들었는데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을까. (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이 바뀌려면 아직도 너무 많은 사람이 노력해야 하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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