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배우자도 산재 유족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지만 불안정한 제도 탓에 유족급여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유족급여 청구를 위해선 사망진단서가 필요하지만 사실혼 배우자는 이를 직접 발급받을 수 없다. 사실혼 배우자의 산재 유족급여 수급권이 배우자 유과족과의 관계에 달린 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사실혼 가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사실혼, 연인ㆍ친구 간 동거 가구를 뜻하는 비친족가구 수는 집계를 시작한 2015년 21만4421가구(47만1859명)에서 지난해 54만5008가구(116만159명)로 8년 동안 2.5배 증가했다.
사실혼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2023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저출산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사실혼 등 여러 형태의 결혼제도를 인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사실혼을 인정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 중 77%는 프랑스의 '팍스 제도(Pacte Civil de Solidarite)'를 도입하면 저출산 문제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프랑스의 팍스 제도는 혼인 신고 없이 연인이 동거하며 자녀를 양육하면서도 법적인 차별을 받지 않고 보호하는 제도를 말한다.
'유가족과의 관계'로 수급 여부 달라지는 현실
사실혼 증가와 국민 인식 변화에 맞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법상 배우자에 사실혼 배우자도 포함해 해석하고 있다. 사실혼 배우자도 산재 유족급여 수급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혼 배우자가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해 유족급여 신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의료법상 배우자에 해당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법상 배우자 범위에서 사실혼을 제외해 행정해석하고 있다.
이태형 노무법인 태흥 대표공인노무사는 "의료법상 배우자의 범위에 대해 행정해석을 요청하면 보건복지부는 법률혼에 한정해 배우자 범위를 해석한다"며 "의료법상 배우자 범위에 사실혼 배우자가 포함되지 않으면 의료기관에 사망진단서 발급을 요청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혼 배우자가 친족관계에 있는 다른 유가족을 통해 사망진단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부갈등 등 사실혼 배우자가 다른 유가족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경우 사망진단서를 받기 어려워진다. 사실혼 배우자 외 유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 노무사는 "다른 유가족과의 협의에 실패하면 의료기관은 의료법에 따라 사실혼 배우자에게 사망진단서를 내주지 않아 유족급여를 받기 어렵다"며 "사실혼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단의 '처분 유보ㆍ소극적 의무기록 열람권 행사' 지적도
사망진단서 없이 사실혼 배우자가 유족급여를 신청하면 근로복지공단은 처분을 유보한다.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의 처분 유보가 소송을 통한 사망진단서 확보를 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규보 법무법인 마중 변호사는 "근로복지공단이 불승인 처분을 하면 소송을 제기해 문서제출명령 등 증거신청으로 사망진단서를 확보하는 방법이 있다"며 "그러나 불승인이 아니라 처분을 유보하면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별도의 행정소송을 거치는 방법을 선택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발생해 사실혼 배우자의 부담이 가중된다"고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사망진단서와 같은 자료 미비를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서류 미비를 이유로는 불승인 처분이 아니라 처분 유보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공단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모두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서류 미비를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하기도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의료법상 가진 의무기록 열람권을 행사해 사망진단서를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의료법에 따라 근로자의 서류제출 요구 등을 이유로 의무기록 열람이 가능하다.
다만 근로복지공단은 사실혼 배우자의 유족급여 청구에 대해 의무기록 열람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있다. 권 변호사는 "공단에게는 의무기록 열람권이 있지만 사실혼 배우자 수급권 문제에 대해서는 열람권을 거의 행사하지 않는다"며 "사실혼 관계만 입증하면 공단이 직접 의무기록을 열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추후 분쟁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의무기록 열람권의 적극적인 행사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다른 유가족들이 사망진단서 제출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분쟁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사건임을 의미할 수 있다"며 "공단 입장에서는 분쟁 가능성이 큰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료기록 열람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유족급여 사건은 사실혼 배우자가 유족급여를 신청한 뒤 법률혼 배우자가 뒤늦게 유족급여를 신청하는 등 분쟁의 형태가 다양하다"며 "근로복지공단이 사실혼 배우자 유족급여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했다.
근본적 해결법은 '의료법 개정'
전문가들은 사실혼 배우자의 유족급여 수급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의료법 개정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권 변호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실혼 배우자도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의료법의 '보험급여를 받는 근로자'라는 표현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항목을 추가해 보험급여 수급 이력이 없는 근로자의 사실혼 배우자에게는 근로복지공단이 사망진단서를 요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법을 개정할 경우 의료기관이 사실혼 관계를 어떤 기준으로 인정할지 추가적으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노무사도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의료법 개정이라고 했다. 이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처분, 의료기록 열람권 행사는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없다"며 "유족급여 제도의 취지와 사실혼이 늘어나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배우자의 범위에 사실혼 배우자도 포함하도록 의료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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